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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국내)

노량진 사육신공원

 

 

 

 

고등학교 졸업한 해였으니 벌써 50년도 훨씬 넘었네요.

제천 사는 이모님 댁에 갔다 혼자 기차 타고 영월을 갔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단종이 기거하셨다는 청령포, 단종의 무덤인 장릉,

단종이 궁궐에 있으실 때 이 곳 꿈을 꾸셨다는 사찰 금몽암(禁夢庵) 등

영월에 있는 단종의 유적을 찾아 눈 속을 헤매고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청령포에 갔을때는 너무나 조용하고 을씨년스럽기도 한 데다

사람이라고는 노병 혼자여서 으스스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그곳에서

목 졸려 돌아가셨다는 단종 모습이 그려지기도 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었지요.

그래서 단종의 마지막 모습을 그렸다는 왕과 사는 남자가 금년에 개봉해 엄청나게 

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다는데도 영 내키지가 않아 그 영화를 보러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고교 동기 모임에서 노량진 사육신 공원을 가자고 오라네요.

일 년에 3 ~ 4번 부부 동반으로 식사 모임을 갖는 여행 모임입니다.

 

 

 

 

 

 

 

예전부터 사육신 묘로 부르던 곳인데 지금은 사육신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더군요.

위치는 전철 1, 9호선 노량진역 1, 2, 8번 출구나 9호선 노들역 1번 출구에서 도보 5 ~ 6분 정도 거리입니다.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불이문을 지나 사육신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의절사를 참배합니다.

의절사 앞 정원에는 1782년 정조 때 세워진 사육신 신도비와 1955년에 세워진 육각비(사육신비)가 있습니다.

 

 

 

 

 

 

 

 

 

의절사 뒤편에 있는 작은 문으로 나가면 사육신의 묘가 있습니다.

사육신(死六臣)은 '죽은 여섯 신하'라는 뜻으로 조선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처형된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응부 등 다섯 명과 잡으러 오자 자살한 유성원 등 여섯 명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당시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처형된 이들을 모두 합하면 70여 명에 이르고 일가까지 포함하면 

수백 명에 이르는데 사육신은 그중 대표적인 주요 인물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하지만 후세에서 보기에는 충신들이지만 당대에는 역적이고 그로 인해 사지가 찢어지는 거혈형을 받았기 때문에

제대로 묘를 쓸 수 없어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시신을 매월당 김시습이 몰래 일부 시신을 수습해 노량진 언덕에

묻었는데 이곳이 지금의 사육신 묘입니다.

처음에는 성삼문, 이개, 박팽년, 유응부의 묘만 있었는데 후에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의 가묘를 추가해

현재는 모두 7개의 묘소가 있지만 명칭은 그대로 사육신 묘라고 합니다.

역적이었기 때문인지 묘비에는 성씨지묘(成氏之墓) 등 성(姓)으로만 기재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유는 모르겠지만 묘소 관리가 너무 허술한 것 같아 공연히 마음이 아프네요.

 

 

 

 

 

 

 

 

 

 

 

 

 

 

 

 

 

 

 

 

 

 

 

 

 

 

 

 

 

 

 

 

 

 

 

 

 

 

 

 

 

 

 

의절사를 나와 우측 언덕으로 조금만 가면 사육신 역사관이 있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사육신에 관련된 설명이 아주 자세하게 되어 있어 한번 들려 보실 만한 곳입니다.

 

 

 

 

 

 

 

 

역사관 뒤로 가면 한강과 여의도를 바라볼 수 있는 조망대가 있습니다.

다만 이곳은 앞에 대규모 고층 아파트가 공사 중이어서 아파트가 들어 서면 전망 보기는 어려울 듯싶습니다.

아직 안 가 보셨으면 한번 들려 보실 만한 좋은 곳입니다 ^^

 

 

 

사육신공원 서울 동작구 노량진로 191

 

 

 

 

사    육    신    공    원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152-3 ( 노량진로 191 )